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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자클린] Hanon&Chopin

  • ikmyeong727
  • 2021년 12월 15일
  • 4분 분량
글 연성


[에밀자클린] Hanon&Chopin


*1차 자캐 연성입니다.


Copyright 2021. 날(NAL). All rights reserved.


-


에밀은 게슴츠레 눈을 떴다가 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에 다시금 눈을 질끈 감았다. 해가 중천이었다.

‘늦게 일어났구나.’

생각하며, 에밀은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아직 피곤해. 그는 누워 있는 채였는데도 머리가 아팠다. 에밀의 머리에 어젯밤의 기억이 간간히 모습을 드러냈다. 아, 어제, 자클린의 연주회. 잘 끝났어. 그 후엔, 술을 마셨지. 자클린과 함께 술을 마시고……. 같이 잠들었어. 이쯤까지 사고가 전개되자 그는 자신의 옆에 누워 있어야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되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문밖에서 들려오는 단조로운 선율. 하농이었다. 에밀은 그 곡이 구체적으로 몇 번인지까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하농의 곡은 60곡. 구체적인 번호와 곡의 흐름까지 외우기에는, 너무 많았다. 물론 비전공자인 에밀의 시점에서 그렇고, 전공자인 자클린에게는 하농이 너무나 익숙한 연습곡일 터였다. 60여곡을 다 외우고, 완벽하게 쳐낼 정도의 내공이 있어야 피아니스트로서 살아갈 수 있겠지, 에밀은 생각했다. 지금 치고 있는 건 몇 번일까? 고민하며 기억을 되짚다가, 그는 궁리를 포기했다. 아, 모르겠다. 그래도, 옆에서 자클린을 오랫동안 지켜본 경험으로, 이걸 다 치려면 한 곡에 한 번씩만 쳐도 1시간 40분이 넘게 걸린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지금 치고 있는 곡은… 트레몰로. 이 부분은 상당히 후반부였다는 것이 에밀의 머리에 스쳐갔다.

‘대체 자클린은 언제 일어나서 이걸 처음부터 쳤던 거야? 그렇게 술을 마셨으면서.’

두 사람은 전날 밤, 꽤 많은 양의 술을 마셨다. 자클린의 이 나라에서의 공연이 마무리되는 날, 그는 여러 사람의 요청을 거절하고 에밀과 단둘이 술을 마시는 것을 택했다. 에밀은 그런 자클린을 위해 꽤 성대하게 요리를 해 내보였다. 자클린이 좋아하는 홍차와 커피를 이용한 칵테일, 그리고 좋은 품질의 와인과 각종 안주들. 그는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얻은 음식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십분 활용하였다. 자클린은 그에 고마워했고, 둘의 오붓한 시간은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둘은 새벽에 함께 잠자리에 들었고, 그렇게 에밀은 푹 자버린 것이었다.

‘먼저 일어났으면 깨우지.’

‘아, 하지만 자클린이 깨운다고 깨어났다면 피곤했겠지, 나는 자클린보다 술에 약하니까……. 같이 마실 때마다 느끼지만 참 부러워. 술을 마시고도 아침에 제대로 일어날 수 있는 저 체질이.’

에밀은 생각했다. 에밀에 비해 자클린은 술에 훨씬 강했다. 성인이 되자마자 술을 마실 때도 둘은 함께였는데, 처음 마신 값싼 와인에 에밀은 금세 취했지만 자클린은 꽤 많은 양을 끝내고도 전혀 반응이 없었고 얼굴이 붉어지지도 않았다. 그 때 에밀의 집에 있었던 것이 다행이었다. 에밀의 술주정에 자클린은 그저 웃으며 그를 잘 챙겨주어, 처음 마신 술의 기억을 그리 나쁘지 않게 만들어 주었다. 술이 별로 질이 좋지 않아 숙취는 겪었지만.

‘재밌었지, 그때.’

혼자 추억을 되새기며, 에밀은 픽 웃었다. 어제도 이 얘기를 했지. 자클린은 그때의 이야기를 꺼내어 에밀을 놀릴 때가 간간히 있었다. 술을 마실 때마다 떠오르는지 이야기하는데, 그때 에밀이 한국어와 프랑스어와 영어를 모두 섞어 말했던 것을 잘도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에밀 본인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말이다. 그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에밀은 그러니까 나한테 술을 많이 먹이려고 하지 마, 라며 웃어 보였다. 부끄럽긴 하지만, 둘만의 추억이니 기분 나쁠 것도 없었다. 게다가 자클린은 간간히 놀린다 뿐이지, 선을 넘지는 않았으니까. 둘의 사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오래도록 유지된 것은 둘 다 선을 지키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서 에밀이 뒤척이고 있을 때, 듣고 있던 피아노 소리가 그쳤다. 그러더니, 잠시 후, 피아노의 ‘음색이 바뀌었다.’ 에밀은 이 순간을 들을 때마다 정말 신기했다. 분명 건반을 누르기만 하면 소리가 나는, 소리를 내기 정말 쉬운 악기인데, 자신과 다르게 자클린이 피아노를 치면 곡의 분위기에 따라 같은 피아노를 쳐도 음색이 수시로 바뀌었다. 정갈하고 절제된 음색에서 한결 산뜻하게 바뀐 음색으로 자클린이 치기 시작한 곡은, 쇼팽의 ‘화려한 대 왈츠.’ 이건 에밀도 잘 알고 있는 곡이었다. 워낙 유명한 곡이라, 누구든 피아노에 관심이 있다면 알고 있는 명곡.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에밀은 자클린의 쇼팽 콩쿠르 무대를 봤던 것이 생각이 났다. 본선 2차 무대에서 이 곡을 고른 자클린은 굉장히 굳은 결심을 한 듯했다. 유명한 곡이어서, 기자단으로부터 스타성을 노리고 이 곡을 택한 것 아니냐는 무례한 질문도 들어올 수 있는 선곡이었기 때문이다. 에밀은 그때 자클린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우리는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한국을 돌아다녔잖아. 그런 나에게 쇼팽의 왈츠는 잘 맞을 수밖에 없어. 왈츠 중에서도 작품번호 18번은 쇼팽이 빈에서 작곡해서 파리에서 발표한 곡이야. 빈과 프랑스를 돌아다닌 내게는 아주 어울리지. 쇼팽이 느낀 그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느낌. 그걸 살릴 거야.”

사실 이렇게 말했지만, 자클린은 왈츠보다는 마주르카를 더 좋아했고, 그 콩쿠르의 입상 결과에서도 3위를 하며 동시에 받은 특별상이 베스트 마주르카 상이었다. 하지만 확실히 왈츠를 연주하는 자클린은 그 특유의 개성을 뽐냈다. 폴란드의 언론에서도 꽤나 많이 다뤄졌으며, 심사위원들도 호평 일색이었다. 맑고 활기찬 프랑스의 영혼, 이라는 평을 내린 기사를 보고 자클린은 굳이 따지자면 나에게는 한국의 영혼도 꽤 크게 자리잡고 있는데 말이야, 라며 코멘트를 달았다.

“그렇지만 좋아하는 곡을 콩쿠르에서 칠 수 있는건 기뻤어.”

자클린이 그때를 회상할 때마다 하는 말이었다. 화려한 대 왈츠는 자클린이 가장 좋아하는 왈츠였다는걸, 오랫동안 곁에 있었던 에밀은 잘 알고 있었다. 자클린이 들려준 명 연주자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의 화려한 대 왈츠는 잘 모르는 에밀이 듣기에도, 뭐라고 할까, 완전히 ‘결이 달랐다.’ 첫 음의 울림마저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에밀은 자클린에게 너 정말 대단한 일을 하기로 결심한 거구나, 라며 감탄을 했다. 자클린은 그때 말했다.

“이 분의 연주를 뛰어넘는 건 쉽지 않을 거야. 이분은 거장이시니까. 하지만 나도 꽤 자신이 있어. 나만의 길을 만들 수 있는.”

‘그렇게 자신감 넘치더니, 결국 쇼팽 콩쿠르에서 3위나 했네. 내 친구지만, 대단한 사람이야.’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덧 그 왈츠까지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아, 너무 오래 누워 있었다.’

곡 듣고 생각에 너무 오래 빠져 있었어. 에밀은 몸을 일으키곤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이제 잠에서 깨야지. 생각하며, 그는 침대에서 나와 기지개를 폈다. 슬리퍼를 신고 방에서 나가자, 넓은 공간에 자리잡은 그랜드피아노에 앉아있는, 금빛의 물결치는 머리카락이 보였다. 산발한 백색 머리를 손으로 어느 정도 가다듬고, 방문 앞에 기댄 채 에밀은 그 열정적으로 건반을 노니는 손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왈츠가 끝났고, 자클린은 잠시 손을 건반 위에 올려두고 있다가, 인기척을 느꼈는지 뒤돌아봤다. 자클린의 청색 눈과 에밀의 녹색 눈이 서로를 마주했을 때, 둘은 가만히 서로 쳐다보다 아하하, 하고 장난스러운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과 함께, 에밀은 박수를 쳤고, 자클린은 윙크를 했다. 둘의 새로운 아침이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자, 새로운 아침이야. Bonne journé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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